영국 10년 내 수능 50% 디지털 전환, AI 채점의 충격
영국이 펜과 종이를 버리고 디지털 시험으로 전환한다는 소식, 믿기시나요? 저는 2007년 브리스톨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때만 해도 체육관에 수천 명이 모여 손글씨로 답안지를 채우던 그 아날로그 풍경이 영국 교육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26년 현재, 영국 최대 시험 주관 기관인 AQA의 발표는 충격적입니다. 향후 10년 내 시험의 절반을 온스크린(On-screen)으로 전환하겠다는 로드맵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건 AI가 채점까지 보조하는 시스템이 공식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는 점입니다.
1억 8천만 장의 시험지 트럭이 멈춘다
AQA의 CEO 콜린 휴즈(Colin Hughes)는 최근 인터뷰에서 디지털 시험이 단순한 유행이 아닌 '생존과 공정성'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영국은 매년 7주 동안 무려 1억 8천만 장의 시험지를 전국 학교에서 수거해 밀턴 킨스(Milton Keynes)의 스캐닝 센터로 운송합니다. 이 어마어마한 종이 뭉치를 나르기 위해 수많은 트럭이 움직이고, 분실 리스크와 탄소 배출이 발생하죠. 디지털 전환은 이 물류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여 시스템을 더 안전하고(Secure) 회복력 있게(Resilient) 만들 것입니다.
영국 자격 및 시험 규제 기관인 Ofqual은 2024년 12월, GCSE와 A-level 시험에 온스크린 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한 공개 자문을 시작했습니다(출처: Ofqual). 이 자문은 디지털 시험이 공정성과 신뢰성을 유지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혁신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Ofqual이 "통제된 도입(controlled introduc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무작정 디지털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각 시험 위원회(exam board)는 연간 응시자가 10만 명을 넘는 고 응시 과목(high-entry subjects)은 디지털 전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이는 영어, 수학, 과학처럼 가장 많은 학생이 보는 핵심 과목들은 당분간 종이 시험을 유지하겠다는 뜻입니다. 대신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같은 언어 과목이나 특정 선택 과목부터 디지털 전환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저는 이 접근이 상당히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한꺼번에 바꾸려다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보다, 작은 규모에서 시작해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게 훨씬 안전하니까요.
하지만 규제가 신중하다고 해서 변화가 느린 건 아닙니다. AQA의 CEO인 Colin Hughes는 최근 인터뷰에서 향후 10~15년 안에 전체 시험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이 온스크린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는 디지털 시험이 단순히 트렌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더 안전하고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선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영국의 GCSE 시험 광경
(출처: https://www.itv.com)
AI 채점 시스템, 독인가 약인가?
영국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는 AI를 활용한 채점 시스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AI 채점(AI-assisted marking)이란, 교사가 숙제나 모의고사를 채점할 때 AI가 보조 역할을 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중고등 입시 시험(high-stakes exams)인 GCSE나 A-level의 채점은 여전히 인간 채점자가 주도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초기 평가나 연습 과제에서는 AI가 적극 활용될 예정입니다. 이는 심각한 교사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영국 교육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서술형 답안을 평가할 때 AI가 학생의 창의성이나 미묘한 논리 전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도 석사 시절 에세이 과제를 제출할 때, 채점자가 제 논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점수가 크게 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읽을 수 있는데, 기계는 그 맥락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Ofqual이 입시 시험의 최종 채점은 인간이 담당하도록 규정한 건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한편, 디지털 시험 환경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부정행위(malpractice) 가능성도 등장합니다. 해킹, 시스템 오류, 개인 기기 사용 시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 등이 대표적입니다. Ofqual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학생들이 개인 기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학교가 제공하는 통제된 환경에서만 시험을 치르도록 규정했습니다. 또한 사이버 보안(cyber-security) 강화와 기술적 장애 대응 매뉴얼도 함께 마련 중입니다. 사이버 보안이란 디지털 시스템을 해킹이나 데이터 유출로부터 보호하는 기술과 정책을 말합니다. 시험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조작되면 전체 시스템의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에, 이 부분은 특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 AI 채점은 숙제와 모의고사에만 활용되며, GCSE·A-level 최종 채점은 인간이 담당합니다.
- 학생들은 개인 기기를 사용할 수 없으며, 학교가 제공하는 통제된 환경에서만 시험을 봅니다.
- 사이버 보안 강화와 기술적 장애 대응 매뉴얼이 필수로 요구됩니다.
유학 준비 전략이 완전히 바뀐다
이제 영국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전략을 완전히 재설계해야 합니다. 제가 일하던 학교의 해외 유학생들이 IB와 파운데이션 코스를 거쳐 영국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손글씨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쓰느냐가 시험 성적을 좌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타이핑 속도와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핵심 역량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디지털 도구와 기술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것을 넘어, 온라인에서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학교마다 디지털 인프라 격차(digital divide)가 크다는 사실입니다. 디지털 격차란 기술 접근성과 활용 능력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뜻합니다. 어떤 학교는 최신 컴퓨터와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지만, 다른 학교는 기본적인 장비조차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학생들의 성취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Curriculum and Assessment Review(CAR) 보고서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됐습니다. 보고서는 온스크린 평가가 SEND 학생들에게 긍정적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학교와 대학의 자원 및 인프라 상황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영국 교육 현장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이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솔직히 말하면 영국 교육은 거북이처럼 느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디지털 전환만큼은 토끼처럼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교사 부족과 교육 격차라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첫째, 자녀가 영어로 생각을 빠르게 타이핑하는 연습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 AI 튜터나 디지털 학습 도구를 적극 활용해 온스크린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지원하려는 학교의 디지털 인프라 수준을 미리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잘 갖춰진 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전략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무작정 디지털 교육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아이에게 어떤 방식의 디지털 교육이 맞는지 부모가 먼저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국의 클래식한 교육 방식을 좋아했지만, 시대가 변하면 교육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변화가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부모가 먼저 디지털 환경을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아날로그 감성을 고집하며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AG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영국의 디지털 시험 전환은 단순히 종이를 화면으로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교육의 공정성, 효율성, 접근성을 모두 재설계하는 과정이며, 그 중심에는 기술과 인간의 균형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영국 유학을 준비하는 가정이라면, 이 변화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이고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저 역시 이 흐름을 계속 주시하며, 한국 학부모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계속 공유하겠습니다.
